사람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을 흔히 본다.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그림 전체의 구도를 본다. 다른 이는 색감을 훨씬 중요하게 본다.
또 다른 어떤 이는 그 그림의 투자 가치를 본다. 만약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면
분명 그 그림의 역사나 화풍 그리고 실물을 봤을 때의 감동을 세세히 기록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것이다.
만약 작가라면 그 그림에 얽힌 사연이 궁금할 것이고, 음악가라면 그 감동을
오선지에 옮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를 교육하는 이유에는
모두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정확히 겉과 속이 다른 모순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교육하는 이유는 자녀가 행복하길 바라서라고 모두 말한다.
그러나 자녀는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결국 모두 공부로 행복해질 수도 없다.
성적이 상대 평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더 열심히 하면
그 행복의 자리는 남의 차지가 된다. 결과적으로 모두 행복하기는 애당초 틀린 구조다.
또한, 부모들이 잘하는 말 중에 건강하게 자라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건강을 해쳐서라도 성적을 잘 받아 오길 바란다. 물론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어디까지가 그 건강을 해치는 마지노선인지 알 수 없다.
더욱이 정신 건강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 역치를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정신력 강화를 시켜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다 아이가 역치를 넘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잘못되지는 않을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힘들다.
이렇기 때문에 아이가 행복해야하고, 아이가 건강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전제는 다소 공허해 보인다.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모순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말에 어떤 분들은 조금 엄히 키워서라도
아이가 성인되어 행복할 수 있다면, 즉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좀 험해도 다 추억으로 남는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이는 현실에서 자주 접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의 전제는 적어도
그 아이가 그 험로를 견뎌야 하고, 그냥 견디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위험하고
반드시 성공까지 해하는 것이다.
성공하지 못 한 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묻히고 성공한 소수의 말만 영웅담처럼
회자되는 씁쓸한 악순환이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어떤 부모도 그 아이가 언제 뛸지, 다른 아이보다 앞서 뛸지,
빨리 뛸지 등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다. 부모는 오로지 아이가 한 걸음 떼는 순간의 안전에 집중하고
아이가 한 발을 떼려는 그 순간의 노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너무 기뻐한다.
이 순간이 거의 유일한 대한민국 부모들이 내 아이와 다른 어떤 아이도 비교하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첫 걸음을 뗄 때, 다시 말해 넘어지고 다시 시도하고 또 넘어지고
기어이 다시 또 시도하는 그 아이를 보던 연민으로 아이를 계속 바라봐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각 발달 과정, 즉 유아, 초등, 중등, 고등이라는 발달과정 안에서 수도 없이
넘어지고 또 다시 시도하려 한다. 매년 새로운 각오로 첫 수업에 참여한 기억이 있는 성인들이라면
그 각오가 왜, 언제 없어지고 다시 쓰러지는지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그 쓰러지는 것이 정상이라 것과 천천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응원도
시간도 함께 줘야 할 것이다. 만약 출발선에 걸음마를 하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결승점에 분유를 하나만 놓아 준다고 해보자. 그리고 부모들이 그 아이들에게
오로지 분유를 쟁취하기 위한 응원과 독려를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어 보인다.
학교의 성적에 집중하는 것은 부모가 결승점의 분유 하나를 놓고 아이를 생지옥으로 밀어 넣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약 아이의 첫 걸음마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아이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작은 성공에 집중한다면
아이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설사 성적이 안 좋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아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살아 본 어른들이 잘 알지 않는가! 성격이 미래인지, 성적이 미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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